아가들아 ! -책읽는 아이-

정의의 재동이-길창덕-

흰날꽃별! 2014. 1. 13. 07:45

 

 

 

 

   정의의 재동이

                 -길창덕-

 

 

 

                  흰날꽃별

                         2014.1.

 

 

 

   그림을 그려 놓고

   갑자기 "정의의 재동이"

   길창덕 선생

   만화 가 생각이 났다.

 

   그시절엔

   유치원도 없고 하니 아마도

   유일하게 아침 대문 앞에

   배달 되어져 있는

   어른신문 한국일보.조선일보와 함께

   오는 소년한국일보가 있었다.

 

   그속엔

   어린이들에 과목과 학년 마다

   국어.산수.사회.자연.등등 풀수있는

   문제 들로 구성 되어져 있는

   여러가지 종합해서 낱말풀기등

   네모 빈칸에 뜻과 또는 숨은 그림찾기도

   빼놓을수 없었던 것들이 연재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 아침 소년 신문을 더 기다리게

   한 것은 학습 문제 공부 보다

   더 반가워 하며 누가 빨리 보나

   좋아하며 읽는 것이

   있었다. 

   재동이" 만화가 먼저 였다.

   연재 만화라 그다음 날은 어떤 만화로

   늘 궁금하게 했던 재동이"

   길창덕" 이 늘 먼저 생각 난다.

   난 어린 마음에

   길창덕"을 상상해 보고 어떻게

   생겼을까 하며

   그려 본적이 참 많았다.

   상상하면서도 많이 웃었고

   길창덕"은 과연

   어떻게 생긴 인물일까? 하면서...

 

그런데...

이렇게도 행운? 에 글을 쓰게 되다니~

 

    "정의의 재동이" 꺼벙이" 와 꺼실이

   명랑한 표정과 엉뚱한 상상력

   천재성 머리에다

   웃음보 터졌던 생각 

   주인공에 모습이 더 우수광스러웠던

   머리 옆 한 쪽에는

   둥그렇게 땜통자국과 

   콧물 훌적이는 모습이 

   늘 말썽은 피우지만 

   결코 미워할수 없는 친근함과

   웃음으로 다가와  주인공이

   우리 어릴적 친구 같은

   모습이 닯아 있었다.

   그때는... 

  

   4,800 회나 국내 최장 연재 되었던

   정의의 재동이" 에서

   -꺼벙이와 꺼실이-

   -여성 잡지에 순악질여사 까지 등등

   왜 만화가에서-군인

   정의의 사나이로 되고 싶고 되었던

   이유도 알고 싶어 졌다.

 

 

   길창덕.

         -만화가. 군인-

 

   1930.1.10~2010.1.30.

 

      꺼벙이"로 유명한

      원로 만화가 1세대의 화백.

   

   1930.1.10.: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

  

           코주부로 유명한 만화가인

           김용환의 그림과 일본 만화

           등을 통해 독학 했다.

           6.25 전쟁당시 월남 하면서

           홀 어머니를 놔두고 와야 했던게

           한 이었다고...

 

   1970. 그의 꿈에서 어머니가 나타나 멀리

            작별한 다음

            산으로 올라가는 걸 보였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며

            종일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1955. 만화가 데뷔

           서울신문

           "머지않은 장래의 남녀상"

 

   1961.5.25~6.28

           대한일보에 꼴뚜기" 연재

 

   1962~82.

           소년한국일보 4,800 회 재동이"

           만화왕국. 소년중앙 6년간.

           어린이 만화 꺼벙이"

 

   1973.1.1~1974.7.1.           

           중앙일보 나원참 여사 연재.

           중앙일보 편집위원역임.

 

   1974.1.17~1984.2,25.

           거북이 경향신문에 연재.

           돌석이 학원에 10년 연재.

           순악질 남편 주부생활에10년 연재.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고문.

           한국 만화가 협회 고문.

 

   1999. 꺼벙이 부천만화 정보센터

           명예의 전당에 헌정.

 

   2001.서울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공로상.

          정보 통신부 꺼벙이"만화 우표발행.

 

   2002. 출판 만화 대상 공로상.

 

   2003. 문화 관광부 훈장. 보관문화훈장.

 

   2006. 제 4호 서울 국제만화 에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어워드

           코믹부분 대상.

 

        명랑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만화가.로 평가됐다.

 

        현재정공 사보에서

        미스터 현정 을 연재한 것을

        마지막으로...

 

  1998.

       부터 폐암으로 인해 작품

       활동을 중단 했다.

 

  2010.1.10.

       12년간 투병 끝에 만 80세

       열흘을 일기로 별세.

 

 

  흔히 만화가로 알려졌지만

  군인이기도 했고 훈장까지

  받았음은 물론

  고인에 뜻은

  묘비에 "만화가 길창덕"이 아닌

  "군인 길창덕"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아마도

  6.25. 전쟁을 겪고 고향에서

  강제로 나와 참전 용사로 또

  어머님에 

  대한 아픔이 더 큰것 같았다.

 

 

  정의의 재동이"

                 -길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