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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 중화문과 석조전 스케치 그림과 함께 한 역사

흰날꽃별! 2023. 2. 15. 05:00

덕수궁 중화전 중화문과 석조전
스케치 그림과 함께 한 역사




-흰날꽃별-
2023.2.15.







덕수궁 중화전 스케치
-흰날꽃별- 2023.1.21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 하거나
조회를 열던곳
조선의 5대왕 중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 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 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새운 건물이다
중화 "뜻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로
성장 으로
중용에서 유래한 말이다




처럼
중화"라는 뜻이
중요하게 건립된 이유을
우리는 알고 가야 겠다
옛날 부터
우리의 민족은 중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그런 깊은 뜻을
오늘 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의문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는
현실에 적응 하고 있다
공평한 사회
공정한 사회 속속 들이
어서 빨리 고쳐 나가야 할것이다
중화"
이렇게 중요한 대목을 잊고
살아온 사회 야속하다







중화전 앞면 광장 풍경





원래
임지왜란 당시 임시 행궁 이었던
경운궁은 인조 연간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 및 주변
별당 몇 채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궁 이었다
그러나
1896년(건양1년)
아관파천 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던
고종은 1년 뒤
1897년(건양2년)
환궁 하면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이 아닌
근처 경운궁을 선택 했다
하지만 몇백년을 버려진 곳을
임금이 거처를 삼으려니
대공사가 필요했다
따라서
명목상 으로는 중건 이라
했지만
사실상 새 궁궐 하나를
창건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한 동 안은 기존에 있던
즉조당 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부르면서
정전으로 사용 했다
그러나
즉조당 은 너무 좁았고
규모 있는 정전이 필요 했다
그래서
제국 선포 이후 5년이 지난
1902년(광무6년) 에야 정식
정전으로 지은 건물이
중화전 이다
창건 당시는 2층 이었으며
겉모습이 창덕궁 인정전과
상당히 흡사 했다
그러나
1904년(광무 8년) 대 화재로
불탄 이후 1906년( 광무 10년)
중건 했는데
재정상 의 문제로 이전과 달리
단층 으로 지었다
이곳 에서 일어난 중요 행사는
1907년 (광무11년) 1월에
치러진 당시 황태자 였던
순종 순정효황후의 결혼식과
1907년 7월 열린 고종이
순종 에게 양위하는 의식 등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에 고종이
승하 한 이후 일제는
1933년에 덕수궁 을 공원화 하면서
중화전 뜰의 반석을 걷고
잔디와 꽃을 심는 등 훼손 했다
8.15 광복 이후 인
1980년대 말 문화재 관리국에서
복원하여 오늘에 모습이다






덕수궁 중화전 옆모습 스케치
-흰날꽃별 - 2023.1.21







덕수궁 중화전 뒷 모습








덕수궁 중화문 스케치
-흰날꽃별- 2023.1.21.





덕수궁 중화문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이다
대한문 으로 들어와
일직선상 으로 금천교를 걷넌뒤
조원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인다
이는 광화문에서 긍정문 까지
일직선으로
경복궁과는 다르다
경복궁 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한 반면
덕수궁 은 원래 궁궐이 아닌곳을
확장하며 지었기 때문 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정문으로
세운 문이다
이름 뜻은 중화전의 문이다
중화 자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장" 이라는 의미로
중용 에서 따왔다
임진왜란 당시 임시 행궁 이었던
덕수궁 의 원래 이름 인 경운궁은
인조 이후
석어당 즉조당 및 주변 별당
몇 채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궁 이었다
그러나
1896년 건양 원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이 1년 뒤인
1897년 (건양 2년)
황궁 할 곳으로
기존의 경복궁 창덕궁 이 아닌
근처의 경운궁을 선택 했다
하지만
몇 백년을 버려진 곳을 임금이
거처로 삼으려니
대공사가 필요 했고 기간도
길어 졌다
그래서 한동 안은 기존에 있던
즉조당 을 태극전 중화전 으로
부르면서 정전으로 사용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이
필요해
하지만 기존의 경운궁 영역은
너무 좁아서 궁역을 넓혀야 했다
그래서
그나마 여유 공간이 있던
남쪽으로
궁역을 확산 한뒤 즉조당과
남쪽 궁정 사이에 정식 정전을
건립 했으니 바로 중화전이다
중화문도 이때 정전의 정문으로
지었다
1901년 (광무 5년) 8월 20일 에
정초 했고 같은달 30일에
기둥 을 세웠으며
9월 24일 에 상량했고
10월29일에 현판을 걸었다
이를 보아 중화전 본 전 보다는
빨리 공사가 끝난 듯 하다
중화문 건립으로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 궁장
가운데 있던 인화문 이었으나
중화문 공사 및 궁 확장 을 하면서
철거 했고 대신 동쪽 문 인
대완문을 새 정문으로 사용 했다
실제로 옛 사진을 보면 인화문 터와
중화문의 위한 몇 걸음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중화문 앞에서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연다







덕수궁 중화문 앞면 뒷편에 중화전 이 보인다








중화전 옆 모습 보이는 풍경
앞쪽으로 보이지 않지만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 건물이 있다







덕수궁 석조전 본관 스케치
-흰날꽃별- 2023.1.21.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은 덕수궁 의 건물이다
중화전의 서북쪽 준명당 의
서쪽에 있다
근대에 지은 석조전은
서양식 건물 양관이
여러 채 있었다
그 중 에서도 근대화 한
대한 제국의
위용 을 보여 주기위해 지은
서양식 황궁이 석조전이다
영국인 하딩(J. R. Hard ding)
이 설계했고
전통 궁궐에서 정전 편전 침전은
각각 따로 있었다
하지만 석조전은 한채 만으로
저 기능들을 모두 수행
할수 있도록
지어 졌다는 점이 특징 이다
건립 연도는
1897년이고 완공 연도는
1910년 이다
대한 제국 수립 연도에
짓기 시작해서
대한 제국이 멸망한 해에
완공 된 비운의 궁전이다
석조의 뜻은
말 그대로 돌 로 만들었다
석조전은 정식 이름 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궁궐 선각 이름을
지을때는 나름 깊은 철학적 뜻을
담았지만
석조전 작명 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
위에 언급 했듯 황궁 그 자체로
세운 건물이니 굳이 따로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석조궁전 석궁 석조전당 등
다양 하게 불렀으며
석조전은 나중 에 붙인 이름 이다
그동 안 나무를 주요 건축 자재로
썼던 한국인들에게는 서양처럼
건물 전체 를 돌로 지었다는 것이
아마 굉장한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석조가 그대로
이름으로 굳어진듯 하다
단 2009년 부터 진행한
복원 공사도중
붉은색 벽돌을 쌓은뒤
석재로 외관을 포장 하여
건축했음 을 확인 했다
즉 이름 처럼 완전히 돌로만
지은 건물은 아니라는것
대 식당 에가면
불 투명 유리로 통해
확인 할수 있다
처음 처럼
황궁 으로 쓰지 못했다
이태왕 으로 강금 당한 고종은
석조전을 공들여 지어 놓고서는
막상 완공 후에는
불편 하다며 거주 하지 않았다
단지 귀빈 접대 및
만찬을 행하는
정도로 사용 했다
침실 로 사용한 것은
이왕세자 로 전락한
의민태자 (영친왕) 이었다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그는
간간히 조선에 올 때마다
여기서 지냈다
1922년에는 아내 이방자와
돌도 채 안된 아기 였던
장남 이진과 함께 와서
머물렀는데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이진이 갑자기
구토를 하고 열이 오른 끝에
이곳에서 세상 을 떠났다







덕수궁 석조전 본관






서북쪽 에 있는 석조전 본관앞 ~ㅎㅎ





1919년 고종 승하 한 후
1933년 일제가 덕수궁 을
공원 화 하여 일반 인 에게
개방 하면서
이 왕가 미술관으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건축 내부와 앞 뜰도
많이 바뀌었다
미술관이 된 뒤 일본 근대
미술품 만 전시 했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처음 에는 조선 작품도 같이
전시 하려 했으나
일본 미술가들이
조선인의 작품을 한 공간에
같이 전시 할수 없다며
반발 했기 때문이다






덕수궁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 스케치
-흰날꽃별- 2023.1.21.







이렇게
석조전의 아픈 역사가 있었다니
슬프다




1936년에는
서남쪽에 새로운
이왕가 미술관을 지어
1938년 완공 한뒤 개관 했다
석조전은
근대 일본 미술 진열관이라 했고
신관은
조선 고대 미술 진열관 이라 하여
조선 미술품 전시 했다
이것이 이후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 으로
흔히
석조관 서관으로 부른다







덕수궁 석조관 서관 신관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







서남쪽 석조전 서관 신관 앞~ㅎㅎ
( 국립 현대 미술관 덕수궁 )







덕수궁 중화전 중화문
덕수궁 석조전
역사와 같이
우리의 아픔 이
앞으로는
일어 나지 않도록
실행도 계획도 설계도
어느 하나 중요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현 사회 정부 정치에
청와대 를 용산 으로 옮겨진
이후
수천억원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허투루 계획하고
몇년 사이 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며 지어지는 것도 아님
하루 아침에
이룰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정확한 증명과 정확한 선의로
이루워져야 할것이다
현재 공사와 계획은 어떻게
되어져 가는 것인지
예산 안을 어느 한곳도
거짓이 없도록
우리 현 정부는 철저히 해 줄것을
믿지만~
국민들은 속속 들이 알수는 없는
것 일수록 철저히 밟혀져
이루워져야 할것이다
옛 역사를 보며
2번 다시 슬픔 의 역사 건물 로
버벅 되어 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