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문 :Jangan Gate 옆 모습(수원화성)
-흰날꽃별-
2021.5.9.
장안문(수원화성)
시대는:조선시대.
소재지: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29
정면 5칸 2칸의 중층누문 수원성의 북문이다.
하나의 홍예문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쪽에 둥근 옹성을 갖추었다.
홍예는 안쪽이 바깥쪽보다 높이나 너비가
조금 크게 만들어 졌는데
안쪽 좌우로는 무사 라고 부르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사다리꼴의 돌출면을
만들고 양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누각으로 오르도록 하였다.
바깥 홍예에는 두짝의 판문을 달았으며
안팍 홍예 사이의 천정 위에는 안팎에 총구를
갖춘 여장(성위에 낮게 쌓은 담) 을 쌓았다.
누각은 다포식의 화려한 공포를 짜고
우진각의 기와지붕을 덮었다.
공포는 내외삼출목으로 양끝에 섬세한
장식이 가미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였다.
벽면에는 모두 판문을 달았는데 양쪽과
양 측면에는 짐승 얼굴을 그리고
뒷쪽에는 태극을 그려 놓았다.
옹성은 문 바같쪽에 전으로 반원형을
그리면서 쌓았으며 한가운데 홍예문을 내었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다섯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문의 좌우 로는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 되는곳에 각각 적대가
마련 되었다.
적대는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한 높은 대로
적을 좌우에서 살피수 있고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 할수 있는 시설이다.
이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규모나 구조가 서울 남대문과
비슷 하지만 옹성 적대와 같은
남대문에는 없는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춘 점이 독특하다.
이것이 18세기 이후 성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이 주장한 바를 실천에
옮긴 결과 이며
특히 실학파 학자들의 적극적인
제안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수원시의 시가지
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으며
1950년6.25. 전쟁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 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
조선 전기에 세워진 서울 남대문에
필적할 만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었고
남대문에서는
볼수없는 새로운 방어시설을 갖춘
진일보한 성문 건축이다.
장안문 옆모습(수원화성)
ᆞ북옹성(수원화성)
북옹성은
1795년(정조19) 창건
1975 년 수리
북옹성은 장안문 바깥에
반달모양으로 쌓은 성으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키는 시설이다.
출입문을 옹성 한가운데 내서
출입하기 편하도록 했다.
조선시대에 만든 여러 성곽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지만 출입문을 중앙에 만든
있는 사례는 장안문과 팔달문이
유일하다.
문 위에는 물을 저장하는 오성지를
설치하여 화공에 대비했다.
오성지(다섯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물을 담는 통)
는 화성에만 설치한 색다른
방어시설로서 정약용이 제안 했으나
설계안 대로 시공 되지 못했다.
북옹성(북옹성의 2층 옆길 모습 풍경)-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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